Would you r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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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New York……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There's nothin' you can't do……. 꿈이니 토마토니 하는 수식어 따위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기회의 땅, 무엇이든 현실이 되는 곳. 여자는 잠결에 노랫말을 헤아리려다가 그만두었다. 여긴 시카고니까.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천장은 지겹도록 칙칙한 색이었고, 암막 커튼을 쳐 놓은 틈새로 희미한 빛이 새어들고 있었다. 밤낮 가리지 않고 번쩍이는 네온사인 따위가 주범일 것이리라. 두통을 자아내는 인공적인 빛에 여자는 도로 눈을 감았다. 홀로 타지에서 생활하는 이에게 주어진 가혹한 호사였다.

여자는 모로 누워 지난 몇 년간 겪은 일에 대해 생각했다. 도보를 거닐던 중 영문 모를 사건에 휘말렸고, 극적으로 살아남았다. 자신을 담당한 의사는 총알을 한 발만 맞은 것이 행운이라고 했다. 이후 모 갱단의 우발적 범행이라고 뉴스에서 소개된 해당 사건은 범인 검거조차 하지 못한 채 일단락되었다. 어깨를 뚫고 지나간 총알은 평생의 흉터와 악몽을 안겨 주었고, 이상한 행운을 성취한 탓에 누군가 벌을 내린 것이라는 생각에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여자는 단조로운 삶을 원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일어설 수 있어야 했다. 자신의 곁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이곳엔 없었기 때문이다. 제 어깨에 각인된 흉한 상처를 보면서 행운이라며 거듭 읊조리던 전문의와, 총격 사건이 있었다던 장소를 들쑤시고 다니는 철없는 이들. 퇴원한 뒤 돌아간 집엔 아무도 없었다.


적막을 깬 것은 소음이었다.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찬물을 끼얹은 여자의 주변이 비로소 소란스러워졌다. 제아무리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지만 적당한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면 질식이라도 할 것 같아 고른 집이었다. 한결같이 방음이 안 되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여자는 이내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약이 다 떨어진 탓에 병원에 가야 했다. 시카고의 밤은 항상 쥐 죽은 듯 고요했고, 행여 누군가 소란이라도 피우는 날엔 배로 안심할 수 없었다. 어쩌면 평생 이어질 지도 모르는 병원 왕례에 지친 것도 사실이었다.


무심코 바라본 창밖이 어두웠다.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시간을 버린 건지. 다음 번엔 제대로 따져 물어야지……. 목소리를 가다듬은 여자는 처방전을 낚아채듯 외투 주머니에 쑤셔넣은 후 병원 출구로 발을 돌렸다. 꾸준히 방문하는 병원 주치의는 처방을 지지리도 못했다. 하여간에 미국은 도움이 안 돼. 처방전 위로 나열된 영어 단어 따위를 중얼거리며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가 항상 향하는 거리에는 늘 사람이 많았다. 밝은 조명 아래 나열된 사람들의 웃음과 발걸음은 여전히 타지의 것이었고, 여자는 그 틈에 낄 수 없었다. 불안정한 생각을 반복하자 또 어깨가 욱씬거리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도 발붙일 곳이 없음을 하루하루 살아낼 때마다 느끼고 있었다.

In New York…… Concrete jungle where dreams are made of…… There's nothin' you can't do…… 어느새 길 한복판에 멈춰 선 여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뉴욕도 시카고도 아닌 곳에 가고 싶어.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흉이 여자를 잠식시켰다.


좁은 벽 사이를 울리는 베이스의 진동이 여자의 눈을 뜨게 했다. 여자는 떨리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신없는 와중 인파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도망친 모양이었다. 밑으로는 길게 뻗은 계단이 있었고, 중앙 홀에서는 옅은 빛이 새어나왔다. 모양새를 보아하니 클럽이나 라이브 홀 같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예고 없는 공연이라니. 것도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처지와도 다를 것 없는 장소에 의미 모를 끌림을 느낀 여자는 홀린 듯 계단을 내려갔다.

발을 디딜 때마다 볼륨이 커지는 듯한 비트 위로 깊은 음색이 깔리고 있었다. 평소 잘 듣지 않는 장르였다. 록도, EDM도 아닌 나레이션 같은 보컬이 단조로운 비트 위를 유영하는 듯한 흐름. 조심스럽게 문을 당겨 연 여자는 어느새 멍하니 스테이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신없는 홀로그램 조명과 열댓 명의 관객 사이 눈에 띄는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욕설과 속어가 난무하는 곡조는 그 누구의 것보다도 생생했다. 마치 자신이 겪은 일 같았다. 회개라도 하는 건가? 자백과도 다름없는 가사를 내뱉는 남자를 응시하며 여자는 생각했다. 마이크를 쥔 손을 바라보며 절박함을 바랐다. 그렇게 직면함으로써 과거를 묻어 두고 싶었다. 여자가 그의 공연을 하루도 빠짐없이 찾게 된 것은 그날 이후부터였다.

“Yo. You good?”

여자는 뒤늦게 시선을 거두었다.

“네?”

“You been looking at me all night.”

“아……. 죄송해요.”

“Why you apologizing?”

남자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공연장을 메꾸는 이들 중 열의 아홉은 솔로 컵에 담긴 맥주 따위를 홀짝이며 리듬을 타는 포저들이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매일같이 자신을 바라보는 외딴 여자가 눈에 들었던 것이다.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응시하다가 이내 돌아섰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Come back next time.”

“…….”

“You heard me. If you liked it, come back.”

여자는 며칠 뒤 다시 그곳을 찾았다. 특별히 남자의 말을 의식한 것은 아니었다. 지겨운 일상의 굴레를 끊어낼 일탈 같은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찾아갔다. 공연장에 갈 때마다 남자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의 시선에서 본 여자는 이상했다.

“Why she keep comin' back to me?”

“Hold up. You again? You really like this place.”

“노래가 좋으니까요.”

“Just the music?”

“네. 이상한가요?”

“Nah, I ain't say that. I'm just surprised. Just wondering what keeps bringing you here.”

“……노래요. 사실이에요.”

“Aight. I believe you.”

그는 웃었다. 여자는 그가 자신을 놀리는 것인지 진심으로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공연장을 매일 찾는 것. 가지각색의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그를 응시하는 것. 이내 가사를 곱씹으며, 저 남자의 행동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잔혹함과 동시에 사실적인 노랫말이 여자의 귓가를 맴돌 때마다 괴로웠다. 지난날의 무의미한 희생과 아픔 따위가 떠올랐다. 그럼에도 구제받고 싶었다. 제 속에 묻어 둔 것들을 쉽사리 내놓지 못하는 여자가 선택한 무언의 방법이자, 도피처였다.

“You always come alone?”

무대를 마친 뒤, 남자가 그녀를 백스테이지로 불러 물었다. 열기가 가시지 않은 장소에서 내뱉을 만한 주제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여자는 살풋 웃었다.

“네에.”

“You got people out here?”

“별로요. 혼자가 편하잖아요.”

“Damn. Chicago's a big place to be alone in.”

“지금 놀리시는 거예요?”

“Well, you know where to find us.”

남자는 무심한 듯 여자의 어깨를 툭 친 뒤 자리를 벗어났다. 여자는 그 자리에 한동안 서 있었다. 별다른 위로도, 특별한 멘트도 없는 가벼움이 여자를 편안하게 했다.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이유에서 자꾸 찾아오는지 알아내려고 하지 않았다. 익숙하지 않은 것 투성이인 시카고 한복판에서 거듭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그날 밤, 여자는 깊게 잠들 수 있었다. 더불어 거듭 생각했다.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지. 오늘 밤엔 기필코 품고 있었던 사실에 대해 고백할 거야. 그는 적어도 진실된 사람이었으니까…….

여자는 그렇게 행동했다. 말하지 않으면 남자를 마주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홀로 좀먹던 과거를 청산하고 싶었다. 진실된 말을 하고 싶었다. 그라면 믿어줄 것 같았다. 끝까지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며 안심시켜 줄 것 같았다. 자신이 설득되었듯이. 스테이지 위로 남자의 실루엣이 비추고, 스피커 노이즈가 공간을 가득 채우는 동안 여자는 조금 울었다. 그야말로 상반되는 태도였다.

“저기, 바쁘세요?”

“Well, look who finally decided to talk to me.”

“누가 들으면 미워하기라도 한 줄 알겠네…… 할 말이 있어서요. 들어 주실 거죠?”

“You got something to tell me? Damn, you tryna make a move? Nah, I'm fuckin' with you. Come on, let's hear it.”

한결같이 가벼운 태도에 여자는 안심했다. 남자는 그녀를 자신의 작업실로 안내했다. 처음 마주했을 때와 같은 눈을 한 여자가 거슬렸다. 그와 동시에 궁금했다. 눈도장 찍는 팬들에게 일일이 서비스할 성격을 소유한 것도 아니었고, 온갖 여성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취미는 더더욱 없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호기심을 느낀 것이다. 쉽사리 캐물을 수 없는 우연과 거듭된 만남 따위에 대해 알고 싶었다. 기회의 땅, 무엇이든 현실이 되는 곳. 넓고 광활한 미국에서, 그것도 인파가 차고 넘치는 시카고에서조차 혼자라니. 남자는 누구보다 외로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궁핍한 어린 시절을 홀로 보낸 그는 일생의 절반 이상을 위험과 죽음에 관여하는 데 썼으며, 여전히 청산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여자가 느꼈을 결핍을 해소해 주고 싶었다. Man, what am I doing…… 남자는 혼자 읊조리며 작업실 문을 열어젖혔다.

“Aight, let's hear what you got.”

“위험한 일을 하셨다면서요. 주변 팬들에게서 들었어요. 당신이 부르던 노래의 가사도 그랬고.”

“Fuck. Everybody talks too damn much. I mean, it ain't like it was hard to figure out. So, you scared of me?”

“아뇨. 끊어 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제 말은…… 휘말린 적이 있어요. 당신과 같은 사람들에게요.”

말을 마친 여자는 조심스럽게 어깨의 흉터를 보여 주었다. 오래전 입은 상처였다. 남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녀가 겪은 사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당시 자신도 그 주변에 있었지만, 모든 상황을 기억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날의 일은 그에게 수많은 사건 중 하나였을지 몰라도 여자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 남자의 허를 찔렀다. 그녀가 자신을 같은 부류로 생각한다는 사실보다, 그동안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Haha. Yeah, I guess I can see why you'd think that. Shit, that's why you've been coming to my shows? Even after hearing all that fucked-up shit I rap about?”

남자는 마른세수를 하며 체념한 듯 물었다. 여자의 어깨에 남은 상흔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누군가를 쏘고, 원망하고, 복수하는 내용의 노랫말을 읊조리는 동안 한 번도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자신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죄를 고백하는 것만 같았거든요. 그래서 계속 듣고 싶었어요. 계속 찾고 싶었어요…….”

당신 덕에 나도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Man, you really are something else…… Look, I never tried to wash my sins away. And I ain't ever gonna. I might end up behind bars again and again. Might even find myself running from the cops. But fuck, because of you, I don't wanna be lumped in with those trigger-happy motherfuckers anymore. You understand? Even if I put the same scar on my own body, it wouldn't change what happened. That shit's a fact.”

남자는 무심코 총을 집어 들었다. 갱단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여자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 마세요.”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무엇을 들고 있는지 깨달은 듯했다. 한동안 총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손을 풀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총이 책상 위에 놓였다.

“Me getting hurt the same way you did ain't gonna change a thing, is it?”

남자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바라던 대답을 들은 것도, 그를 용서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처음으로 그가 자신의 과거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If I need you, would you be there for me?”

“그럴게요…….”

“I just know I can count on you to ride for me if I get locked up.”

여자는 긍정했다. 남자는 여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듯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그가 다시 물었다.

”Would you ride?“

여자는 대답 대신 그의 등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fin. (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