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t in bloody panopticon
1107

November sixth. 아날로그 달력의 10월 페이지를 찢고 11월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과 동 시에 여자의 시야에 들어온 숫자는 당연하게도 6일이었다. 그날은 익숙한 기일이었던 탓인데, 그러나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차이콥스키도 샤를 10세도 아닌 26세의 어느 남자였다.

언제나 짙은 땅거미 속에서도 눈을 번뜩이는 남자. 피가 섞인 가족은 11살에 진작 잃었음에도 Only The Family의 일원일 수 있었던 의 래퍼. 9mm 구경의 핸드 건으로부터 발사되 었던 지극히 심심한 탄환에 꿰뚫린 안타까운 몸체. 이제 그 목구멍의 안으로부터 성대가 진동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지언정 음원을 재생한 채 눈꺼풀을 닫는 것만으로도 여자는 그곳에 방 문한 경험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선명한 O-Block의 모양새를 상상해 낼 수가 있었다. 그 공감 각적인 가사의 표현은 남자가 가진 뛰어난 재능 중 하나였으므로.

주문한 음료가 나오면 귓가에서 빼려고 한 에어팟은 그러나 웬일로 단체석에 잔뜩 모여든, 아마도 모임으로 추정되는 이들의 한꺼번에 몰려든 주문 탓인지 공급 지연을 맞아 좀처럼 바 석 테이블 위에 놓인 블루투스 이어폰의 케이스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없었다. 대신 노이즈 캔슬링을 등을 내맡길 수 있는 형제처럼 뒷배에 둔 남자의 랩은 그녀를 0로 데려다 주었다.

그다지 을 하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지만(대마를 피우기 위해 연초의 종이를 찢어 담뱃잎 을 긁어낸 뒤 잎을 채우고 다시 불을 붙이는 것은 정말로 귀찮은 일이라는 것에 이의를 보이 는 이는 없을 게 당연했다), 최소한 그는 여자를 심상적인 개념에서라도 자신의 홈그라운드에 가져다 두었다.

....She wanna smoke, so I bought some dope and took her to the O.......

한참을 음악에 몰두하고 있자면 바텐더가 여자에게 술잔을 건넸다. 미리 주문해 두었던 올 드 패션드 글라스에 담긴 구릿빛의 러스티 네일은 그 이름과 같은 색조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여자의 앞에 놓였다. 그것을 입가로 바로 가져가는 대신 그녀는 잔을 집어 살짝 기울이더니 가볍게 안의 칵테일을 흔들었다. 듀어스 화이트 라벨 대신 들어간 아드벡의 피트 향이 강하게 비강을 침투했다. 드림뷔를 적게 넣고 스카치 위스키를 싱글몰트로 대체한 레시피는 언제나 그녀가 이 바에서 주문하는 가벼운 커스텀이 반영된 것이었다. 이가 모조리 썩어 문드러질 정 도로 단 게 아니라면, 술은 차라리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동시에 아주 솔직하고도 진한 알코 올이 들어간 것이 낫다. 여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드디어 잔으로 입술을 축였다. 평소와 다르 지 않은, 달지 않은 러스티 네일이었다.

"Man, Can I crash this seat?"

위스키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쌉싸름한 술을 마시고 있자면, 어느새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여자가 무어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어쩌면 그 질문을 던지기도 전에 낯선 이는 여자 의 바로 왼쪽, 가장 코너에 있는 비어있던 자리에서 어둠 속에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누구라도 충분히 당황스러울 상황이었으나 그녀는 그저 살짝 고개를 까딱이며 마시던 음료를 다시 한번 목구멍의 너머로 넘겼다. 보드카나 브랜디와는 다른 뜨거운 기운이 식도를 타고 내 려가는 것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퍽 익숙하고도 긍정적인 감각이었다.

"You completely blanked me."

"애초에 무슨 대답을 돌려주었어도 앉았을 거잖아요?"

잠깐의 주저조차 없이 즉답하는 여자를 보고 정확히 3초 뒤 남자는 낮게 목을 긁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실로 즐거운 감정으로부터 흘러나온 진짜 웃음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어째서인지 깨닫고 있었다. 마치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남자는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고, 바텐더는 그로부터 가장 먼 바 석 안에서 잔을 닦고 있었기에 그의 웃음을 불러일으 킬 만한 요소는 확실히 러스티 네일을 마시고 있는 옆자리의 여자밖에는 없었을 것이었다.

"You fuckin' deadass?"

한참을 웃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거친 표현에도 여자는 태연했다. 모르는 타인이 내뱉은 말 이라면 기분이 나쁘거나 겁을 먹을 법도 했으나 그녀는 다만 언제나의 낯으로 위스키를 탄 독 한 술을 음미하고 있었다. 여자라고 해서 특별히 힘이 있거나 누군가 뒤에 있는 것이 아니었 다.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머리를 내리치면 두개골이 꺼지고, 다리를 망치로 때리 면 분쇄골절 행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그 여자에게 특별한 소질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핸 드백의 안쪽에 담겨 있는 어떠한 것에 대한 커다란 집착이··· ···.

"그렇게 보였다면 미안해요…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여자의 목소리에는 정말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음에도 저런 음 성과 저런 문장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무래도 사기trick에 굉장한 재 능을 가진 이가 분명했다.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일순 조용해지더니 잠시 혼자만의 생각에 빠 진 것처럼 보였다. 떠올리고 싶은 특정한 기억이 도저히 뇌골수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는 듯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여자는 그의 낯이 보이지 않음에도 어째서인지 그것을 알 수 가 있었다. 오만한 판단에서 그치지 않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는 종류의 감각은 군용 나이 프의 날과 같이 예리하게 빛을 난반사하고 있었다. 남자는 몇십 초를 더 그렇게 괴로워하더니 곧 바의 테이블을 한 번 주먹으로 쾅 쳤다. 위협의 의미가 아니었다는 것을 안 것인지 바텐더 는 특별히 주의를 주러 오지 않았다. 두 사람 다 그런 것이야 어찌 되든 상관 없었지만.

"Totally ring the fuckin' bell."

"어떤 것이..?"

"We met before. There was a reason I thought you my family."

family, 에 특히 악센트를 준 그의 말은 수십 년간의 병증에 시달린 끝에 완치된 불치의 환자를 떠올리게 했다. Where we met? You named what? 쏟아지는 말에 여자는 하나하나 대답하는 대신, 조금 눈을 굴리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네요."

"As usual?"

"네. 저는 항상 이날의 당신을 기다렸잖아요. 구원을 위해. 영면의 축복을 위해."

구원. Salvation. 그 말을 감히 입에 담은 여자를 향해 남자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만 면에 서린 것은 그러나 그런 발화에 깃들곤 하는 오만과 기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구태여 표 현하자면, 초면에는 절대로 불가할, 중할 정도의 애정과 무서우리만치 적재되어 있는 일방 적인 상대에의 시선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중앙의 가려진 관제탑을 감싼 원형의 감옥 panopticon이다. 탑 내부의 교도관이 언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인지를 모르는 채로 수감된 죄 수들은 언제나 양자역학적인 시선의 존재라는 미지에서의 공포를 느끼며 차마 탈옥의 시도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는 자신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것에는 기가 막히도록 정통했다.

"Nah···, you said that you want my salvation. Then you can tryna bleeding for me."

"그 말대로예요."

여자의 답은 분명 긍정의 색채를 띠고 있었음에도 어딘가 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허나 그런 이들이 대부분 취하는 어중간한 의지력과는 다른 어떠한 무언가가 그녀의 눈에는 깊숙이도 심 겨 있었다. 삭아가는 조명이 겨우 매달려 불빛을 밝히는 어두운 클럽의 그림자 속에서도 선연 히 보이는 것만 같은, 유약하면서도 형형한 어떠한 눈의 물기가.

아니, 다시 보면 그것은 눈의 물기가 아니다. 조금 더 무거운 냄새가 나고, 탄창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있는 그 원관념은, 어쩌면 이미 몇 번인가 맞닿았던 지난 11월 6일의 기억 을 이끌어낸 것은…..

당신을 위해 피를 흘린다는 말은 반드시 직관적인 선언으로만 해석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그보다도 그것은 각오의 표현. 의지를 언어로 바꾼, 이를테면 막 튕겨 손등에 안착한 코인 뒷 면의 이야기.

그렇다면 그녀가 말한 구원의 뒷면은 무엇일까.

남자의 사고가 겨우 그것에 닿을 무렵 여자는 백을 열어 무언가를 꺼냈다. 잘 감싸고 있던 보드라운 천을 풀면, 그 안에 있는 것은 남자도 잘 아는 모양새의 글록 19·····.

"No cap."

"…...."

"Shit."

처음으로 남자의 태도에 작은 크랙이 생겼다. 그러나 그 균열은 이미 지난 망자의 날의 장 식용으로나 쓰일 법한 조악한 장난감 뼈다귀 신사에게 미세한 금이 가게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를 파고들지는 않았다. 남자의 골수를 취할 그녀의 수단은 따로 존재했으므로.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단체석의 시끄러운 객들과 잔을 닦는 바텐더, 여자의 앞에 놓인 러스티 네일까지 를 모두 포함하여, 사실은 남자 자신까지도 집어삼키는 이 술집의 진짜 이름은 아마도······.

"Home sweet home. 올해도 좋은 꿈을 꾸세요."

"Wait-."

Dream sweet dream.

남자가 문장을 제대로 맺어내기도 전에 방아쇠는 당겨졌다. 남은 것은 매캐하고 뿌연 화약 으로부터의 탄내와 혼자 벤치에 앉은 여자뿐이었다. 귀에 꽂힌 에어팟에서는 여전히 랩이 흘 러나오고 있었다. 눈이 오기에는 이르고 볕을 쬐기에는 서늘한 기상예보를 애써 보지 못한 체 하며, 여자는 핸드백의 안에 권총을 넣고 그 총구를 어루만졌다. 급속히 식었다고는 해도 여 전히 뜨거운 열감이 남은 총기가 왼손 약지에 지저분한 화상을 입혔으나, 그럼에도 그녀가 총 으로부터 손을 떼는 일은 없었다.

11/06/2020. 6년 전의 그날 이후로 더욱 강해진 총기에의 집착은 곧 남자를 떠올릴 수 있 는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으므로.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구원인 것이다. 꿈에서 막 깨어난 걸음 걸이로 여자는 아무도 없는 공원을 나섰다. 차가운 바람에 날려 그네가 아주 조금씩 흔들려 끽끽거리는 소리를 냈다. 내년에도 그는 아마도 여자를 O-Block에 데려다 줄 것이다. 모욕의 스프는 분명 끓어오를 터이니. 스스로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음 해에도 한발 늦은 핼러윈이 될 것임을 믿으며, 웃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나 그녀의 꿈인지 여자 본인조차도 알 수 없 었던 까닭이었다.


Fin(cm. w/hakano)